조선독립동맹 (김두봉 등) 조선독립동맹(김두봉 등)

※ 김두봉
1910년 일제는 이완용 등을 앞세워 그해 8월 22일 강제 합병조약을 체결하고 8월 29일 한일 완전합병을 선포했다. 국권이 피탈되자 김두봉은 안교재, 남형우, 신배부, 이경희 등 동료들과 함께 비밀결사단체인 대동청년단을 조직하여 활동했다. 그러나 1913년 대동청년단일본 경찰에 적발되어 관련자들이 검거됨으로써 활동은 실패로 돌아갔고 그는 배재학당을 중퇴해야 했다. 배재학당을 자퇴한 김두봉은 당시 최남선이 운영하던 광문회(光文會)에 입사하여, 한글을 연구하며 회보와 잡지 "청춘" 등을 편집했다. 이때부터 한글학자로도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했다.

그는 민족혼을 일깨우고자 대종교에도 입교하여 입교하여 교인이 된다. 동시에 계속 유명한 국어학자인 주시경선생 밑에서 한국어를 연구했고 조선어사전 말모이 편찬에도 참여했다. 스승인 주시경이 한글 국어사전인 우리말본을 짓고 가르치는 일에 혼신하는 것에 감격한 김두봉은 사전 만드는 일을 곁에서 돕고 있었다. 그러나 스승 주시경1914년 7월 27일 한창의 나이에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나자 그는 스승의 뜻을 계승하여 한글 국어사전인 《조선말본》을 쓰기 시작한다.

1916년 4월 조선말본이 드디어 완성되어 서울에서 세로 쓰기로 조선말본을 편찬, 발행할 수 있었다. 이 국어사전은 당시 서울말을 기준으로 하고, 우리말 이해를 위해 순한글로 집필하되, 옆에 한자를 써놓았다. 1916년 음력 8월 대종교 교주 나철의 시봉자(侍奉者) 6명 중의 한사람이 되어 나철을 따라 강화도 구월산 삼성사(三聖祠)에 들어가 수행하던 중, 8월 15일 나철의 순교를 목격하고 내려온다.


1919년 그해 이동휘 등을 통하여 공산당에 입당하였다.


연안파 - 조선독립동맹


최종계급 : 조선의용군 최고사령관

주요참전 : 대동아전쟁 한미전쟁

기타이력 : 조선독립동맹 주석,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 겸 국가수반



※ 조선독립동맹

조선독립동맹은 1942년에 화베이에서 결성되어 화북조선독립동맹이라고도 부른다. 당수는 김두봉이었고, 김무정, 최창익, 백남운, 허정숙 등이 당의 주요 간부로 활동하였으며, 당의 군사조직을 갖추고 있었다. 당의 군사조직인 조선의용대김무정이 총사령으로 지휘하였다.

화북조선청년연합회를 확대ᆞ개편하여 1942년에 결성하였다. 정당 형태의 결사체로서 중국 공산당의 예하조직으로 출발, 1945년 귀국 직전에는 수백 명의 당원을 거느린 집단으로 성장했다. 당의 군사조직으로는 조선의용군이 있고, 지휘자는 김무정, 최창익, 한빈, 허정숙 등이었다.

1945년 8월 해방이 되자 귀국하였다. 1946년 한반도 남부에서는 백남운에 의해 남조선신민당으로, 한반도 북부에서는 김두봉, 김무정에 의해 북조선신민당으로 각각 분열되었다.


자매 조직이자 예하 조직으로 조선여성동맹이 있었다. 조선여성동맹의 지도자는 독립동맹의 선전부장이기도 한 허정숙과 여성 독립운동가 김명시 등이 맡았다.


※ 위키사전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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